2023년 3월 30일, 정기 재산공개 내역에서 공직자의 가상화폐 소유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2009년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발행된 이후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가상화폐 소유 여부와 금액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공직자의 가상화폐 소유 사실은 재산 내역이 아닌 ‘변동사유란’에 기재된 내용으로 파악됐다. 현재 공직자 재산 신고·등록 때, 가상화폐를 등록할 수 있는 재산 항목은 따로 없다.
비트코인으로 대표하는 가상화폐가 자산 축적과 증식의 수단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관련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상화폐를 통한 재산 신고 회피와 누락·은닉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비트코인 등록 재산 항목 없어 ‘현금’에 등록
가상화폐 소유가 처음으로 확인된 공직자는 대통령비서실 박범수 농해수비서관이다. 박 비서관은 올해 3월 30일 공개한 재산 내역에서 지난해 10월 공개 때, 신고한 배우자 명의의 현금 300만 원이 현재는 150만 원으로 줄었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박 비서관은 변동 사유 항목에 현금 감소 이유로 '비트코인 가액변동'이라고 기재했다.
박범수 비서관은 2022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에 임명됐다. 이 때가 공직자로서 첫 재산 공개였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재산 공개 대상자로서 재산 등록 시, 비트코인 소유 여부를 기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를 신고할 수 있는 재산 항목이 없었기 때문에 등록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박 비서관은 현금 항목에 비트코인 소유 여부를 등록해도 되는지, 농림축산식품부 재산 신고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담당자는 막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 비서관은 ‘재산등록 신고서’의 현금 항목에 300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만약 이렇게만 재산 등록을 마쳤다면, 박 비서관의 비트코인 보유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 비서관은 이 현금 300만 원의 보유가 실은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별도 명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산 흐름과 형성의 상세 현황을 설명하는 ‘재산변동 요약서’에 이 현금이 비트코인이라고 기재했다.
2022년 10월 28일 공개된 박범수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의 최초 재산 내역에는 배우자 명의의 현금 300만 원이 신고돼 있다. 그러나 당시 공개된 재산 내역만 봐서는 이 현금이 비트코인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당시에는 ‘재산변동 요약서'에 기재한 내용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재산변동 요약서가 비트코인 등록 유일한 방법…재산 등록할 때는 달리 방법이 없다.
공직자의 재산 등록 신고 시기가 되면, 재산 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 윤리복무국 재산심사기획과에 가상화폐에 대한 공직자들의 문의가 잇따른다. 재산심사기획과 담당자는 “가상화폐를 신고해도 되는지, 신고해야 하는지 올해 역시 문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재산신고 안내서에 나와 있는 내용과 동일하게 안내한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가상화폐 소유 여부는 재산 등록 신고 시, 필수 기재 사항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를 등록할 수 있는 재산 항목도 없다. 다만, 재산변동 요약서에 비트코인 보유 내용을 기재하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
‘2023년 정기 재산변동신고 안내서’에는 재산변동 요약서 작성 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보유한 경우 해당 통화 보유수량 및 취득가액, 평가액(신고기준일 현재) 등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재산등록 신고서’에 가상화폐 소유 여부를 기재할 수 없으니 ‘재산변동 요약서’라도 작성하라고 안내하는 것이다. ‘재산변동 요약서'는 ‘재산등록 신고서'의 재산 항목별 현금 흐름을 표 형식으로 보여주는 별도의 서식 문서다.
가상화폐에 투자한 재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재산변동 요약서'에는 가상화폐를 구매할 당시 어떤 방식으로 구매했느냐에 따라 해당 재산 항목에 가상화폐 보유수량 및 취득가액, 평가액(신고기준일 현재) 등을 기재한다. 현금으로 샀으면 현금 항목으로, 채권을 팔아 샀으면 채권 항목에 기입하는 식이다.
앞서 소개한 박범수 비서관의 사례를 예로 들면 현금 300만 원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였으니 현금 재산 항목에 300만 원을 기재하고 ‘재산변동 요약서' 비트코인 구매라고 기재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이것만이 가상화폐를 재산 등록 신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재산 등록 방법 없다보니, 비트코인 2억 9천만 원이 ‘1천원짜리 통장’으로 왜곡되기도
부산광역시 의회 이승연 의원은 지난해까지 소유하고 있던 가상화폐를 모두 팔았다고 신고했다. 3월 30일, 그의 정기 재산공개 내역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이 의원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계좌에 있던 2억 9백여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와 ‘업비트’ 계좌에 있던 6천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전량 매도했다. 지난해 신고한 매수액과 비교했을 때, 1억 3천만 원 정도 손해를 봤다. 매수액은 각각 2억 9천7백만 원, 1억 1천만 원이었다.
이승연 의원은 2022년 6월 1일 제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그해 8월 첫 재산 신고를 했다. 이 의원은 당시 선거 전에 사들인 가상화폐를 신고·등록하기 위해 부산광역시 의회와 세종에 있는 정부 측 재산 등록 신고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당시 이 의원은 가상화폐를 사들인 금액인 총액 4억여 원을 다 적으려고 했으나 의회 재산 등록 담당자는 ‘그건 아니다'라고 거부했다. 현재 가상화폐 가액을 기재하기도, 그렇다고 매입 당시 금액을 적기도 난감했다. 더구나 매입 기준일을 찾아 당시 얼마에 거래됐는지 가상화폐 평가 금액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신박한 묘책’이 나왔다.
부산광역시 의회 공직자 재산 등록 신고 담당자는 각각 1천 원씩 두 개의 예금 계좌를 만든 다음, 그 1천 원짜리 통장이 각각의 거래소에 있는 가상화폐의 총액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상정하고, 계좌 비고란에 가상화폐 매수 총액을 기재하라는 ‘신박한 방법’을 알려줬다. 이 의원은 “당시는 이게 진짜 1천 원이 될지, 아니면 더 많아질지 알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건 그냥 ‘상징적 의미로 1천 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당선 후 공개된 2022년 9월 30일, 이 의원의 재산 신고 내역에는 어디에도 가상화폐에 대한 내용은 없다. 다만 이 의원의 설명대로 본인의 예금 항목에 '농협은행 1', '케이뱅크 1'이라고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협은행 1’은 1천 원이 돈이 든 계좌가 아니라 실제론 가상화폐 2억 9천만 원, ‘케이뱅크 1’도 1천 원짜리 통장이 아닌 가상화폐 1억 1천만 원을 의미했다. 결국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한 탓에 이 의원의 재산 규모와 이전 과정에 심각한 왜곡 현상이 일어났다.
2023년 3월 재산 공개 내역에 이 의원의 가상화폐와 해외 주식은 모두 매도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는 선출직 공직자로서 가상화폐, 해외 주식 소유는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모두 처분하고 채무를 상환했다고 했다.
아무튼 민간인 신분 때 예전에 (가상화폐) 열풍 불었잖아요. 그때는 저도 좀 빚 갚는 데 상당히 엄청난 도움을 받았는데 궁극적으로 다시 사고팔고 이래 하면서 마지막 팔때 기준에서는 손해가 이제 한 1억 가까이 났었죠. 그냥 뭐 그렇습니다.
이승연 부산광역시 의회 의원
가상화폐의 재산 신고 관련 법안은 2018년 정동영 전 의원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여러 건이 발의됐다. 1천만 원 이상의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재산공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안이 아직 상임위 논의 중으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그 사이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어도 정상적으로 등록할 방법이 없어 공직자들만 애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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