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2%라고 발표됐다. 그리고 올해는 대부분 기관이 1%대 경제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1.9%, 기획재정부가 1.8%, 국가미래연구원이 1.67%로 전망한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2010년대만 해도 평균 3%대는 됐다. 2020년 초반 들어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성장률이 급등락했지만, 그래도 평균 2%는 넘었다. 그런데 지난해 2%를 기록하더니 올해 1%대가 예상된다. 이런 추세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10년 내 0%대가 현실화할 것이다.
한국 경제성장률 하락세를 지켜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부자가 되면 안 되는 사회, 큰돈을 벌려고 하면 욕먹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구나.” 경제성장률이 0%대라는 것은 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득이 증가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른바 ‘제로섬(zero-sum) 사회’다.
경제성장이 멈춘 ‘제로섬(zero-sum) 사회’에서는 부자가 비난받는다. [GettyImages]
제로섬 사회는 198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자였던 레스터 서로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생산량이 고정돼 있어 사회적 이득의 총합이 0이 되는 사회를 일컫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군가 이익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가 손실을 본다. A가 10 이익을 얻으면 다른 사람들이 10 손실을 보는데 B 한 명이 10 손실을 보거나, C·D·E가 합쳐서 10 손실을 보는 식이다.
이에 반해 ‘비제로섬 사회’는 생산량 증가로 사회적 이득의 총합이 플러스가 되는 사회다. 이때는 누군가 이익을 얻어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익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A가 10 이익을 얻을 때 B는 5, C는 2처럼 손실을 보는 사람 없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몇십 년간 비제로섬 사회였지만 이제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제로섬 사회가 돼가고 있다. 제로섬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당장 소득이 감소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가난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소득이 줄어들지 않고 제자리라면? 소득이 늘어 더 잘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현상 유지하듯이 살아가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제로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구조가 그 사회의 제도와 규범, 사고방식을 규정한다고 봤다. 제로섬 사회가 되면 우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제로섬 사회의 핵심 사고방식은 “부자는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부자만이 아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더 잘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도 나쁜 놈이다. 돈에 욕심내지 않고, 더 잘살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지금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미덕인 사회가 된다.
경제가 성장하는 사회, 비제로섬 사회에서는 내가 돈을 벌어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보상을 잘하면 서로 이익을 얻는 ‘윈윈(win-win) 관계’가 성립한다. 이때는 부자가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돈을 벌려고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듣지 않는다.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게 나쁜 짓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가 제자리걸음인 제로섬 사회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내가 돈을 벌었다는 건 누군가가 그만큼 돈을 잃었다는 뜻이다. 내가 큰 부자가 되면 그만큼 망한 사람이 나온다. 제로섬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돈을 번다. 큰돈을 번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돈을 빼앗은 자다. 다른 사람을 가난에 빠지게 하고 자기만 잘사는 자다. 결코 칭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당기면 그 앞에 있는 우리에 전기충격이 가해져 그 안에 있는 원숭이가 고통을 받는다. 처음에는 자기 때문에 우리 안 원숭이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자기가 바나나를 먹으려 할 때 우리 안 원숭이가 고통받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원숭이는 어떻게 할까. 우리 안 원숭이가 고통받든 말든 바나나를 먹을까. 아니면 우리 안 원숭이가 고통받지 않도록 바나나를 포기할까. 70%가량의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지 않았다. 자기가 굶주려도 최대한 바나나를 먹지 않으려 했다. 반면 30% 정도는 그냥 바나나를 먹었다. 대부분 착한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를 희생해 자기 배를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원숭이의 고통을 생각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는 원숭이도 분명 적잖게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다른 사람을 고통에 처하게 하면서까지 자기가 잘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제로섬 사회가 되면 부자가 되려고 하거나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분명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원숭이와 같은 존재다. 이런 사람들만 큰 돈을 벌고 부자가 되니 자연스레 부자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통 사회에서 부자가 존경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산업혁명 이전 전근대사회는 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않는 제로섬 사회였다. 조선도, 중세 유럽도 그랬다. 이런 사회에서 누군가 부자가 됐다는 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빼앗았다는 의미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어느 나라든 부자가 많은 비난을 들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세계 각국은 제로섬 사회에서 비제로섬 사회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자가 되는 게 가능한 사회가 됐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것을 비난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종교 개혁자 장 칼뱅은 “돈을 버는 건 하나님의 은총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큰돈을 버는 건 하나님의 은총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근대 자본주의 성장은 이렇듯 돈을 버는 게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칼뱅의 주장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하지만 당시 칼뱅이 이런 주장을 한 것, 그리고 이런 주장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회가 비제로섬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제로섬 사회였다면, 즉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고서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였다면 칼뱅의 주장을 사회가 순순히 받아들였을 리 없다.
한국은 이대로 간다면 더는 성장하지 않는 제로섬 사회가 된다. 그럼 지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각이 그때는 용인될 수 없는 사고방식이 될 것이다. 부자가 되려 하는 것, 큰돈을 벌려 하는 건 조선시대처럼 반사회적 행동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학생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 하면 칭찬받는다. 하지만 제로섬 사회가 되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학생은 나쁜 놈, 이기적인 놈으로 비난받을 것이다. 조선, 중세 유럽에서 의사와 변호사의 지위가 낮았던 건 다 이유가 있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임금인상은 다른 사람의 소득을 빼앗는 나쁜 짓이다. 반드시 먹고살 만큼의 돈을 요구하는 것만 인정된다. 그 이상의 돈을 원하는 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지금보다 잘살게 된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못살게 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걸 비난하고 발목 잡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제로섬 사회는 그런 사회다. 최근 저출산 등 여러 사회 문제가 지목되는데, 제로섬 사회로 변모는 그에 못지않은 큰 문제다. 한국이 제로섬 사회가 되는 것만은 막았으면 한다. 그건 부와 관련해 조선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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