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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들 "월급, 한국 돈 대신 코인 주세요"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by 마메쏙 2025. 5.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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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걱정 없는 가상 화폐 선호

그래픽=백형선

“사장님, 코인(가상 화폐)으로 월급 주세요!”

충북 음성에서 20년 넘게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을 운영해 온 50대 사장 A씨는 올해 1월 처음으로 휴대전화에 ‘전자 지갑’(온라인에서 입·출금 및 송금이 가능한 가상 화폐 계정)을 깔았다. 외국인 근로자 30여 명이 줄줄이 “한국 돈은 필요 없다”며 코인으로 월급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그간 이들에게 매달 20일 200만원씩을 현금으로 지급해 왔다. 그러나 직원들 성화에 결국 가상 화폐 앱을 깔았다. 환전·송금 과정을 익히느라 몇 날 밤을 새웠다. 몇 달 전부턴 달러와 코인의 가치를 1대1로 고정하는 ‘스테이블 코인’ 종류인 테더(USDT)로 월급을 주고 있다. A씨는 “은행을 자주 찾기 힘든 우리 직원들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급여를 가상 화폐로 받고 있는 것으로 15일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공장이나 농장 등에서 일하면서 일당이나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입금·송금이 불편한 현금 대신 스마트폰으로 코인을 받는 게 더 낫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곳곳의 공장·농장주들의 손과 마음이 바빠졌다. 가상 화폐 업계 관계자는 “은행 계좌를 못 여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선 코인이 ‘공식 통화’로 통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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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그간 외국인 노동자들은 현금을 쥐고 있다가 주말이나 휴일에 시내로 나가 송금소나 은행을 방문해 본국으로 송금해 왔다. 그러나 도난 위험이 컸다. 작년 말 경기도 양주시의 한 공장에서 네팔 출신 노동자가 숙소에 보관 중이던 현금 1000만원이 사라졌다. 공장 근로자들 사이에선 ‘현금 갖고 있다간 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인도·스리랑카·네팔 출신의 근로자들이 “우리끼리 못 믿을 게 아니라 코인으로 월급을 달라고 하자”며 사장을 설득했다.

일당·월급을 가족들이 있는 본국으로 송금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송금 수수료도 든다. 불법 체류자들은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도 없는 만큼, 지인들에게 대리 송금을 부탁해 왔다. 이런 리스크(위험성)들을 단번에 줄일 수 있는 게 코인이다. 네팔인 노동자 B씨는 “계좌가 없어도 월급이 휴대폰에 고스란히 저장되니 너무 안심이 된다”고 했다.

 

특히 이들이 선호하는 건 가상 화폐 중에서도 비트코인도 아닌 ‘스테이블 코인’. 그중에서도 발행량이 800억개가 넘는 1위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다. 1USDT는 항상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한다. 미·중 분쟁 등으로 최근 환율이 널뛰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건 달러 가치가 보존되는 테더뿐”이란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테더를 ‘디지털 달러’라고 부른다. 서울의 한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D씨는 “송금 도중 환율이 급락해 20만원 넘게 손해 본 적도 많다”며 “지금은 코인으로 받아서 환율 걱정이 없어졌다”고 했다. 미얀마는 2021년부터 내전 상황이 계속되면서 자국 통화 가치가 급변하고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인력난에 지친 사장들이 먼저 ‘코인으로 줄 테니 일해 달라’고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전북 고창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박모(56)씨도 “은행 앱도 안 쓰던 농장주들이 요새 휴대전화를 붙잡고 코인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다. 이 중 약 40만명은 불법 체류자로 추정된다. 경기도 동두천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태국·필리핀 출신 성매매 여성들도 코인으로 일당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정부 입장으로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코인 규모가 커질 경우 외환 수급 및 환율 변동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반드시 ‘통화’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코인으로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고령화·저출산으로 전국의 산업·농업 현장 곳곳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단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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