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트코인으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단연코 마이크로스트래터지(나스닥 거래명 MSTR)다. 전 세계 상장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고, 계속해서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미국 시간으로 6월 20일, 1만1931BTC(비트코인 개당 단위)를 추가로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평균 매입단가는 6만5883달러. 이에 따라 총 비트코인 보유 규모는 22만6331개(당시 시가 83억3000만 달러)로 늘었다. 전체 평균 매입 단가는 개당 3만6798달러다.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속도보다 놀라운 건 이 기업이 자금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사는 건 그렇다 치고, 시중금리보다 훨씬 싼 이자에 돈을 빌려(채권을 판매해) 현금을 마련하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릴 때 지급하는 이자(연준 기준금리)의 절반도 안 되는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한 번에 수억 달러를 빌려서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가 말도 안 되는 싼 이자를 주면서 돈을 빌리는 비밀은 무엇인가.
마이크로스트래터지의 비트코인 전략은 전적으로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마이클 세일러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를 알기 위해선 세일러를 알아야 한다. 1965년 2월 네브래스카주 링컨시에서 태어난 그는 공군 ROTC 장학금을 받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해 항공우주엔지니어링과 과학사를 복수전공했다. 2002년 1월 5일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보면, 공군 직업군인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전투기 조종사를 꿈꿨지만 신체검사 건강 문제(심잡음·heart murmur)로 포기한 뒤 기업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1989년 24세에 마이크로스트래터지를 창업했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1998년 6월 닷컴붐을 타고 나스닥에 상장했다. 대주주였던 그는 30대 중반에 수십억 달러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회사다. 기업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재고 및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제공 회사로 출발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비자(VISA), 힐튼호텔,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알리안츠, 스탠더드차타드, 이베이, ABC방송 등 세계적 기업들이 현재 고객이다. 2024년 1분기 매출은 1억1520만 달러다.
세일러가 이끄는 마이크로스트래터지가 회사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건 2020년 8월이다. 세일러의 표현을 빌리면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찍어내기 때문에 갈수록 가치가 희석되는 현금을, 공급량이 정해진 희소 자산인 비트코인으로 바꿔서 자산가치를 보전하는 전략’이다. 당초 세일러는 비트코인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2013년 12월 18일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비트코인은 생존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정부 규제로 쪼그라든) 온라인 도박 같은 운명을 맞는 건 단지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랬던 그가 개종(?)한 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이었다. 세일러는 여러 차례 방송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를 비트코인으로 전도한 인물은 오랜 친구이자 모건스탠리 채권 트레이더 출신의 비트코이너 에릭 와이즈(Eric Weiss)다. 두 사람은 같은 동네인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살면서 수시로 어울릴 정도로 가까운 친구다. 와이즈는 2021년 12월 비트코이너인 로버트 브리드러브(Robert Breedlove)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세일러가 비트코인에 빠지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와이즈와 세일러 두 사람은 2020년 3월 무렵 팬데믹 영향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오랜 기간 경제가 엉망이 될 걸로 예상해 갖고 있던 주식을 왕창 팔아치웠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와 중앙은행 연준이 상상도 못 할 돈을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폭락했던 주가는 불과 3개월 만에 최고치를 넘어 신고가 행진을 했다. 당시 팬데믹으로 외부 활동이 어렵던 때라 둘은 세일러 저택에서 자주 어울렸다.
“이전에도 세일러한테 비트코인 얘기를 종종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세일러는 주제를 딴 데로 돌리곤 했죠. 팬데믹 시절 우리는 정부가 돈을 그 정도로 찍어내 엄청난 자산 인플레이션을 만들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분노가 치밀더군요. 그때 세일러에게 비트코인 얘기를 다시 꺼냈죠. 근데 이번엔 달랐어요. 진지하게 저를 보며 더 얘기해 달라고 했어요. 며칠 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 얘기를 해줬어요. 다 듣더니 어떻게 하면 비트코인에 대해 더 배울 수 있는지 물었고, 내가 아는 자료를 전부 알려줬어요. 스스로 공부하더니 비트코인에 완전히 빠지더군요. 얼마 뒤 전화가 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가 (개인 돈으로) 비트코인을 좀 샀다는 거예요. ‘잘했네’라고 얘기해 줬죠. 근데 ‘1만’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비트코인 하나가 1만 달러 정도였어요. 1개 산 거 알리려고 전화했나 싶어서 ‘1개 샀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에릭. 1만 개 샀어’ 하더군요. 1억 달러어치를 산 거였어요.”
세일러가 비트코인에 깊숙이 빠진 뒤 개인 돈으로 1만 개를 산 시점은 대략 2020년 7월 중순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같은 달 28일 마이크로스트래터지가 2분기 실적 발표 회의에서 주주들에게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앞으로 1년 동안 2억5000만 달러 현금을 주식, 채권, 그리고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자산과 금 같은 상품(commodities) 등에 투자하려고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2주 후 비트코인 2만1454개(당시 2억5000만 달러 규모)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남는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산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싼 이자 비용으로 돈을 빌려 비트코인을 사기 시작했다. 이자 보상은 시중금리보다 턱없이 낮지만 대신 채권 만기 시점에 채권자가 현금 상환 또는 주식 전환 중에서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는 전환사채를 판매했다. 이자로 받는 수익은 보잘것없지만 회사 주가가 앞으로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투자자가 많아야 성공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방법이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2020년 12월 6억5000만 달러 전환사채를 판매했을 때 조건은 이렇다. 만기는 2025년 12월 15일, 이자는 연 0.75%였다. 1000만 달러 채권을 구입한다면 연간 이자로 받는 돈은 7만5000달러뿐이다. 1000만 달러를 투자하면 5년 동안 총 37만5000 달러 이자 수입을 올리는 조건이었다. 중요한 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만기 시 원금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고, 정해진 가격으로 환산해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으로 받을 수 있었다. 5년 뒤 행사할 수 있는 주식 가격은 채권 판매 시 기준가격인 289달러45센트보다 37.5%가량 높은 397달러 99센트로 책정됐다. 채권자는 채권 만기가 되는 2025년 12월 시점에 마이크로스트래터지 주가가 397달러 99센트보다 높을 경우, 현금으로 돌려받지 않고 주식으로 전환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2020년 12월 11일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계획대로 전환사채를 판매해 6억5000만 달러 현금을 마련했다. 열흘 뒤인 21일, 전환사채로 마련한 6억5000만 달러로 비트코인 2만9646개를 추가로 사들였다. 비유하자면, 미래 가격으로 미래에 발행할 주식을 팔아 현재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방식이었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가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비트코인을 사는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회사는 사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에다가 전환사채를 판매해 마련한 돈을 합쳐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방식을 되풀이해 왔다. 회사 측은 2024년 6월 17·18일, 8억 달러어치 전환사채를 판매했다. 만기는 2032년 6월 15일, 이자는 고작 연 2.25%였다. 연준 기준금리의 절반도 안 되는 이자로 판매한 채권이 완판된 건 만기 시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 때문이었다. 만기 시 주식 전환 가격은 6월 13일 기준가격 1513달러 46센트보다 35% 비싼 2043달러 32센트였다. 2032년 6월 만기 때 마이크로스트래터지 주가가 2043달러 32센트보다 훨씬 높을 걸로 기대하는 투자자가 충분히 존재했기 때문에 전환사채 판매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환사채 판매 직후인 6월 20일 마이크로스트래터지는 7억8600만 달러어치 비트코인 1만1931개를 추가로 사들였다. 2020년 12월부터 2024년 6월까지 회사 측은 전환사채 판매로만 총 39억 달러 규모의 현금을 조달해 비트코인을 사는 데 썼다.
마이크로스트래터지가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한 2020년 8월 140달러 수준이던 회사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움직였다. 비트코인 가격이 5만9000달러에 육박한 2021년 3월엔 800달러를 찍었고, 암호화폐거래소 FTX 파산 사태로 비트코인 가격이 1만6000달러대로 떨어진 2022년 12월 초엔 14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회복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탔다. 지난 3월엔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효과로 비트코인 가격이 7만 달러를 넘어서자 주가가 1700달러를 넘기도 했다. 6월 24일 미국 증시 종료 시점 가격은 1372달러 15센트였다.
실리콘밸리의 의료장비 회사이자 나스닥 상장기업인 셈러사이언티픽(Semler Scientific)은 지난 5월 28일 현금 4000만 달러로 비트코인 581개를 회사 준비자산으로 사들였다고 밝혔다. 이사회 의결에 따라 비트코인을 회사의 가장 중요한 준비자산으로 비축해 나가기로 했고, 그에 따라 비트코인을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회사 측은 웹사이트 공지를 통해 ‘사업 특성상 영업이익으로 현금이 많이 쌓이는데, 기업 인수를 포함해 현금 활용 방안을 검토하다가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비축하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100만 개로 공급량이 정해져 있는 희소하고 유한한 자산인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회사의 자산가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 측은 그로부터 1주일 뒤 “1700만 달러 현금으로 비트코인 247개를 추가 구매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투자 컨설팅 회사 메타플래닛(Metaplanet Inc.)은 6월 24일 10억 엔(약 620만 달러) 규모의 채권(전환사채가 아닌 일반 채권)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1년 만기에 연 이자 0.5%인 채권을 발행하는 목적은 회사 자산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0∼0.1%인 일본 기준금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비트코인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메타플래닛은 4월 회사 준비자산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6월 11일 현재 메타플래닛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141개다.
두 회사는 모두 마이크로스트래터지의 비트코인 자산 전략을 따라 했다. 주가는 급등했다. 비트코인 자산 전략을 발표한 5월 28일 25달러에서 시작한 셈러사이언티픽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이 7만 달러 가깝게 오른 6월 12일 40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4월 8일 비트코인 자산 전략을 공개한 날 19엔에서 30엔을 넘길 정도로 폭등한 메타플래닛 주가는 6월 12일 107엔까지 올랐다. 두 회사 주식 모두 비트코인 가격 변동에 정비례해 움직인다.
셈러사이언티픽과 메타플래닛 두 회사가 마이크로스트래터지처럼 전환사채를 발행해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할 거라고 믿는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기업이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비축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주가를 올릴 거라고 믿는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마이크로스트래터지처럼 미래 주식을 팔아 현재 비트코인을 사는 방식을 따라 할 기업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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