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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성향도 자산 격차 벌리는 큰 요인

마메쏙 2025. 2. 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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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이 동일한 액수의 세뱃돈을 받아도 이후 수중에 가진 금액에는 차이가 난다. [GettyImages]

 

어린아이 3명을 키우는 집이 있다. 이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따로 주지 않는다. 필요하거나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부모가 판단 하에 사준다. 그 대신 명절날 부모나 친척에게 세뱃돈을 받으면 그건 아이들이 각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아이 3명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 친척들은 같은 금액의 세뱃돈을 준다. 즉 이 3명이 친척들에게 받은 돈의 합은 동일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현재 수중에 갖고 있는 세뱃돈 액수의 차이는 상당하다. 한 명은 받은 돈을 다 써버려서 남은 돈이 없다. 한 명은 반 정도를 쓰고 나머지를 저축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돈을 별로 쓰지 않아 많은 액수가 남아 있다. 어른 시각에서 볼 때 큰돈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벌써부터 상당한 자산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돈 대하는 태도와 소비 습관이 차이 갈라

일반적으로 자산의 불평등이나 자산 격차를 얘기할 때 그 원인으로 소득 수준, 각자가 처한 환경·제도 차이 등을 지목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직 소득이 없고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환경·제도가 동일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산 격차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각자가 돈을 대하는 태도, 소비하고 저축하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소득과 환경·제도 등에서 발생하는 격차보다 각자의 선택과 성향에 의한 격차가 더 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회적으로 구성원의 소득과 환경·제도 등에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자산의 불평등, 격차가 커진 사례가 있을까. 있다. 스파르타가 그런 경우다. 인류 역사상 가장 평등한 시스템으로 유명한 나라가 바로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다. 스파르타는 국가 형성 초기 단계에 리쿠르고스라는 혁명가 손에 의해 빈부 차이가 없는 완전한 평등을 이뤘다. 그는 모든 사람의 토지를 몰수한 뒤 똑같은 크기의 땅 3만 개로 나눴다. 그리고 그중 9000개를 스파르타 남성 시민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나머지 2만1000개 땅은 시민권이 없는 주변인, 스파르타에 항복한 사람, 노예에게 경작하게 했다.

리쿠르고스는 토지 이외 분야에서도 평등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우선 먹거리에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공동 식당을 만들어 시민들로 하여금 모여서 식사하게 했다. 각자 먹거리를 가져오고, 그것을 다 같이 나눠 먹는 방식이었다. 또 주택 크기와 구조도 정해놓았다. 모든 시민이 같은 형태의 집에서 살았다. 사치를 방지하고자 사치품은 아예 만들지 못하게 했다. 거래도 금지했다. 당시 스파르타 주변 다른 나라들은 금화를 화폐로 사용했는데, 스파르타는 사치를 막겠다며 금화가 아닌 녹슨 쇠를 화폐로 썼다. 또 가정환경, 교육 여건 등에 의한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아이가 7세부터 공동생활을 했다. 유치원, 학교 등에서 함께 지내는 것을 넘어 아예 합숙을 하는 공동생활이었다. 이렇게 아이들끼리만 모여 사니 부모 영향으로 격차가 벌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완전 평등’ 스파르타, 왜 불평등해졌나

이렇게까지 평등을 추구했다면 스파르타 시민은 끝까지 모두가 평등하게 살았어야 한다. 각자 신체 조건이나 개성 등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더라도, 모두에게 똑같이 땅을 분배한 만큼 적어도 자산 측면에서는 동등했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파르타 시민 사이의 불평등도는 커져만 갔다.

스파르타 시민은 무기 구입 및 공동생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부금을 내야 했다. 이 기부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시민 계급에서 떨어져나갔다. 국가 형성 초기에 땅 9000개를 나눠줬으니 시민이 9000명이었는데, 기원전 480년쯤에는 8000명 정도였고 기원전 418년에는 4000명이 됐다. 기원전 371년에는 1200명이었으며 기원전 240년에는 70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700명도 온전히 자산을 보유한 게 아니었다. 진짜 자산이 있는 사람은 100명가량이었으며 나머지 600명은 빚이 있었다. 대부분이 시민 계급에서 떨어져나갈 위기에 처했다. 단 200여 년 사이 빈부격차가 없는 완전 평등 사회가 극도로 불평등한, 특히 대다수 사람이 자산을 잃은 가난한 사회가 된 것이다.

스파르타 시민이 사치를 해 자산을 잃은 게 아니다. 스파르타는 사치를 극도로 억제하는 사회였고, 사치하려 해도 시장에 사치품 자체가 없었다. 특별히 돈 쓸 일도 없는데 어떻게 돈이 부족해 다른 사람에게 땅을 파는 일이 계속 발생했을까.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시작했는데도 시민 계급 자격을 잃을 만큼 격차가 발생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모두에게 자산을 평등하게 나눠줬는데 이후 격차가 심하게 발생한 또 다른 사례로 러시아 민영화를 들 수 있다. 러시아에는 올리가르히라는 초부유층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로 러시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 소련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주요 대기업이 모두 국유 기업이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국가 소유 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업을 소유하고 지배하게 된 게 바로 올리가르히다.

주식 바우처 모은 러시아 올리가르히

소련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올리가르히가 대기업을 살 만한 돈이 있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대기업 대주주가 된 건 민영화 과정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기업 주식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국가 주요 대기업을 민영화하면서 러시아 국민 1억5000만 명에게 이들 기업 주식을 살 수 있는 바우처를 무료로 나눠줬다. 러시아 국민은 이 바우처를 사용해 러시아 주요 대기업의 주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 대부분은 이 바우처를 대기업 주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냥 바우처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푼돈을 받고 팔아버렸다. 이때 바우처를 대량으로 사 모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대량으로 모은 바우처를 대기업 주식으로 바꾸면서 대주주가 될 수 있었고, 이들이 지금의 올리가르히가 됐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자산을 가졌다고 평등한 사회가 되는 건 아니었다. 동일한 액수의 세뱃돈을 받았음에도 돈이 많은 아이가 있고, 돈이 없는 아이가 있다. 9000명이 같은 크기의 땅을 나눠 받았으나, 대부분 그 땅을 처분하고 100여 명만 자산가로 남았다. 1억5000만 명에게 똑같이 주식 바우처가 배분됐으나, 대부분 그것을 팔아서 쓰고 소수만 기업 대주주로 남았다. 러시아 민영화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바우처를 처분하게 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스파르타 시민은 같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그런 변명도 하기 어렵다. 이건 개인의 선택과 성향에 따라 자산 격차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자산을 모으려는 사람이 있고, 자산이 있으면 그걸 처분해 당장 쓰려는 사람이 있다. 자산을 계속 모으는 사람은 자산을 늘려나가고, 결국 자산을 처분해 소비하는 사람과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성경 마가복음 4장 25에는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많은 사람이 사회 제도를 개혁해 자산을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자산 불평등, 자산 격차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산 격차가 환경·제도뿐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성향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면 어떨까. 자산을 똑같이 나눠준다 한들 결국 다시 불평등 사회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 제도를 개선하는 것보다 개개인이 자산을 최대한 처분하지 않고 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사회 불평등을 줄이는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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